[기사단장죽이기] 넘쳐나는 이데아와 메타포(는 모르겠지만...)
무라카미 하루키의 7년 만의 신작 <기사단장 죽이기>
설레었다. 친구도 오래된 친구가 좋고, 책도 예전에 읽었던 작가의 신작이 새로운 작가의 책보다 더 반갑고 몰입도도 높다.
사실, 7년 만의 신작이어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이전 책들을 읽었던 느낌만 남아 있고 스토리는 어땠는지 거의 기억에 남아 있지 않아서 이전 책들과 함께 이야기를 하는 것은 어려울 것 같지만, 그냥 설레었다.
두 권 합쳐서 1,000페이지가 넘어가는 분량이지만, 읽다 보면, 정말 술술~ 읽힌다. 1,000페이지가 무색하게.
1.
나는 아내에게서 갑자기 6년만의 결혼생활을 끝내자는 이혼 통보를 받고, 그야말로 멘붕 상태가 된다. 필요한 몇 가지만 들고 도망치듯 집을 나온 나는 두 달여간 일본 전역을 방황하다 친구의 도움으로 친구의 부친이 살던 집에 머물게 된다. 친구의 부친은 아마다 도모히코라는 유명한 일본화 화가. 평소 초상화를 그려서 먹고 살았던 직업 초상화가였던 나는 잠시 그 일도 접고 아마다 도모히코의 집에서 자신이 정말 그리고 싶었던 그림을 그리기로 결심한다.
그런데... 자신의 에이전트에게서 거액의 초상화를 그려달라는 제안이 왔다는 연락을 받고, 고민 끝에 수락하게 된다. 초상화를 제안한 사람은 이웃마을에 사는 멘시키씨. 백발의 훤칠한 중년의 남자다. 외모부터 뭔가 수상한 남자인데, 알면 알수록 더욱... 수상한 사람이다.
그런데... 멘시키씨를 만나고 나서부터는 더욱 이상한 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기 시작한다.
한편, 나는 아마다 도모히코의 집 천장 다락에서 아마다가 그렸을 것으로 추정되는 그림 한 점을 발견했는데, 그 그림은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 조반니]의 등장인물을 일본 아스카 시대로 옮겨놓은 듯한 그림으로 기사단장을 칼로 죽이는 그림이었다. 그림이 갖고 있는 힘에 전율한 나는 아마다 도모히코라는 인물과 그 그림의 숨겨진 이야기에 파고들게 되는 데...
멘시키씨의 초상화를 완성하고 나니, 자신의 초상화에 흡족한 멘시키씨가 추가로 일을 제안하는데, 그 일은 바로, 자신의 딸일지도 모르는 아이의 초상화를 그려달라는 것. 역시 치밀한 멘시키씨다. 딸과의 안면을 트기 위해, 딸이 평소에 다녔던 미술학원의 선생님(나)에게 자신의 초상화를 제안하고, 그 다음에 딸의 초상화를 제안한 것이다. 딸일지도 모르는 가족과 엮인 후로는 더욱 더 이상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한밤 중에 집 주위에서 방울소리가 들려서 나가 보았더니, 사람 키보다 높은 구덩이가 있고, 거기에 방울이 떨어져 있어서 그 방울을 집어왔더니, 갑자기 '기사단장' 형태를 한 '나'의 '이데아'가 불쑥 나타났다. 그 '이데아'는 내가 위기에 빠져있을 때, 찬스처럼 쓸 수 있는 친구 또는 조력자 같은 이데아인데, 형태도 오묘하지만, 역할도 오묘하다. 그 '이데아'가 나에게 주는 조언 아닌 조언으로 나의 인생은 내일을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는데...
2.
아내의 이혼 통보 후, 친구의 아버지 집인 아마다 도모히코의 집에 머물게 되면서, 멘시키를 만나고, 점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이상한 일에 휘말린 나는 결국 현실로 돌아온 앨리스처럼 재결합을 하자는 아내의 말에 재결합을 하게 된다. 자신의 아이인지, 아내가 외도해서 낳은 아이인지 모르는 아이와 함께 그렇게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자신의 딸일지도 모르는 아이를 멀리서 바라만 봐야하는 멘시키, 자신의 딸이 아닐지도 모르는 아이를 아빠로 키워야 하는 나, 정말 소중했던 동생 고미를 잃고 큰 상실감을 갖고 있는 나, 죽은 동생 고미를 닮은 멘시키의 딸에게서 무언의 힐링을 얻는 나, 뭔가 인물과 인물들이 얽히고 설켜서 서로 위안을 주고 감정을 보듬어 주고 있다.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넘나들며.
3.
이데아와 메타포가 넘쳐나고, 나오는 인물은 많지 않지만, 그 몇 몇의 인물들이 깊이 얽히고 설키면서, 다양한 관계와 의미를 만들어 내면서, 하나의 의미가 세포 분화하듯이 분화하여 다양한 의미로 퍼져나가면서, 한 손에 책의 주제가 잘 안잡힌다. 하지만, 극도의 상처를 받은 인물이 새로운 인물을 만나고 새로운 일들을 겪으면서, 상처를 치유하고, 회복하는 과정을 현실의 경계를 모호하게 흔들면서 마치 하룻밤의 꿈처럼 그려내고 있다. 하루키는 마치 우리 마음속과 머릿속을 들어 왔다 나간 것처럼 우리의 머릿 속에 스친 찰나의 관념을 언어로 뽑아내고, 우리의 찰나의 실재를 꿰뚫어 보고 그것을 언어로 뽑아내고, 힘있게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역시 거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