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수다

[사월의 미, 칠월의 솔] 함께 산책하는 즐거움

삼동집 2014. 1. 7. 16:05
반응형

사월의 미, 칠월의 솔 표지

 

<청춘의 문장들>로 시작된 김연수와의 인연은 어느덧 그의 신작이 나올때면 으레 구입하게 되는 그런 사이가 된것 같다. 온라인서점을 방문했다가 우연히 책이 발간된 걸 알고 그냥 주문했는데, 의도치않게 자필싸인이 된 책을 받았다. 싸인이 된 책을 받으니, 어째 김연수와의 사이가 좀 더 가까워진 것 같았다. 이래서 사람들이 연예인에게 싸인을 받나...

 

책을 주문할 때만 해도 장편소설인 줄 알고 주문했는데, 받아보니 단편집이었다. 대부분의 단편집들은 읽은 후, 기억에도 잘 남지않고, 장편소설에 비해 울림이 적어 보통 읽지 않는데, 이번은 자연스럽게 예외가 되었다. 2008년부터 2013년까지 문예지에 발표된 총 열한 편의 단편소설이 수록된 이번 단편집은 단편인데도 장편만큼 흡입력있었다. 단편이지만, 이야기의 깊이감은 장편 못지 않았다. 역시 길이는 중요하지 않다.

 

김연수의 소설은 기본적으로 추리 방식으로 이야기를 구성한다. 궁금증을 유발하는 사건을 먼저 벌여놓고 독자가 궁금해하는 정보를 필요할 때에 하나 둘씩 던져줘 독자들의 애간장을 태운다. 그래서 쉽게 몰입하게 만든다. 이번 단편집에서는 초반에 화자의 성별을 선뜻 파악하지 못하게 해 독자들을 더 궁금하게 만든다. 마치 그의 이름처럼 주인공들의 이름도 중성적인 이름들이 많고 이름이 직접적으로 언급되지 않더라도 화자들의 말투가 여자인지, 남자인지 헷갈릴 때가 많다. <일기예보의 기법>에서 화자는 남자인 데, 화자가 여동생이나 엄마와 주고 받는 대화를 보면, 여자같기도 하다. <인구가 나다>의 주인공의 이름은 은수. 이름만 보면, 성별을 가늠하기 힘들다. 

 

김연수는 한국 근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을 모티브로 종종 사용하는데, 이번 단편들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푸른색으로 우리가 쓸 수 있는 것>에서는 故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을, <파주로>에서는 광주사태가 사용된다. 개인적인 이야기에 사회적 사건을 결합해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열한 편의 단편 소설의 소재는 다양하지만, 모두 우리 주위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나 혹은 당신의 이야기이기에 공감이 가고, 위로가 된다. 상처받거나, 외롭거나, 지친 나에게 너만이 아니라며, 토닥여 주는 기분.

 

<사월의 미 칠월의 솔>과 <일기예보의 기법>의 주인공들의 대화를 읽고 있으면, 마치 만화책 읽는 것처럼 배꼽을 쥐게 한다. 소설이 이렇게 웃길 수 있다는 게... 김연수의 필력이 그만큼 세다는 뜻일 것이다. 분명, 그는 수다쟁이 일 것 같다.

 

가장 마음에 드는 단편은 <인구가 나다>.  제목만 봤을 때는 이게 무슨 뜻인가 싶다. 바이올린을 제작하는 은수에게 어느 날 정인구라는 소년이 낡은 바이올린을 사달라고 가져온다. 정인구는 자기가 천재 바이올리니스트였는데, 집안 사정상 바이올린을 팔아야한다고 말하는데, 은수는 그런 인구에게 거짓말하지 말라며, 매몰차게 몰아 붙인다. 왜 그럴까 했는데, 그 바이올린은 은수가 오래 전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에게 준 바이올린이었던 것. 인구를 계기로 옛사랑을 생각하게되고, 자신이 잊고 있었던 자신의 예전 모습을 생각한다. 또한 이제는 돌아가지 못하는 오래전 나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인구가나다>를 다 읽은 후, 제목을 다시 한 번 들여다보고는, 저자의 엄청난 의도에 소름이 돋았다. 어릴 적 바이올린을 배우다 청소년기에 가정 및 자신 스스로의 능력에 한계를 느껴 그만둔 인구와 화자가 닮은 꼴이었다. 그리고 그 둘이 살았던 동네까지. 그래서, 제목이 <인구가 나다]> 였던 것이다. 이런 추리 요소가 소설 곳곳에 존재하고 있어 독자들을 더욱 흥미롭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