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채가없는 다자키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해review] 우리의 불완전한 마음이 빚어낸 감정의 생채기
나만의 하루키였던 시절은 가고, '선인세만 16억을 넘게 받았다'는 등 하루키의 기사가 책이 나오기 수 개월 전부터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보면서, 그 기세에 눌려 사실 이번 책은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얼핏 나와 비슷한 나이인 30대 중반이 된 다자키 쓰쿠루가 10대 시절의 친구들을 하나씩 찾아가면서 잃어버렸던 자신을 찾아가는 이야기라는 이야기를 듣고서는, 본격적인 하루키 열풍의 시작이었던 [상실의시대] 생각이나 읽고 싶은 마음이 생겨버렸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제목이 한 번 들어서는 도무지 입에 붙지 않는 이 타이틀은 책을 조금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이해가 간다. 다채로운 색으로 디자인한 책의 표지마저도. 30대 중반의 다자키쓰쿠루가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을 찾아나선다기에 30대가 되어 현재의 팍팍한 삶의 패턴에 지친 사람이 잃어버렸던 진짜의 나를 찾아가는 기분, 일종의 그런 기분을 받고 싶어서 이 책을 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사실 그런 이야기는 아니다. 내가 잠깐 하루키를 잊어버렸었나 보다. 읽어가면서, 하루키는 '이런 작가였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예전의 그 건조한 느낌이 다시 떠올랐다.
스무살 초반의 다자키쓰쿠루는 완벽한 공동체라고 생각할 정도로 친한(친하다는 표현이 가벼울 정도의) 고등학교 시절의 친구들에게서 어느날 이유를 알지못한채 절교선언을 당한다. 그래서 그 시절의 다자키쓰쿠루는 죽음만을 생각하면서 살았다. 그렇게 정신적으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온 쓰쿠루는 30대 중반이 되어 소개팅으로 만난 두 살 연상의 여자 사라의 제안으로 잃어버렸던 친구들을 찾아가기로 한다. 스무살 즈음의 다자키 쓰쿠루에게서 일어난 그 일이 30대 중반이 된 지금까지도 그의 머릿 속을 편하게 놔두지 못하고, 보이지않는 올가미처럼 그을 옭아매고 있음을 깨달았기에.
완벽하다고 생각했던 그들의 관계에 알게 모르게 있었던 미세한 균열이 시간이 갈수록 왜곡되고 변형되어 겉잡을 수 없이 깊어져가는 모습을 보면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불완전한 관계에 대해,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에 공감했다. 하루키의 건조한 문체는 이들의 관계를 더욱 외로워 보이게 만들었다. 불완전한 인간의 마음에서 생겨난 시기, 질투, 알 수 없는 미묘한 감정들이 이들의 관계에 소리없이 침투해 이들의 관계를 좀 먹는 모습을 보면서, 나와 타인의 관계를 생각하게 되고 그러한 면에서 공감이 갔다. 처음 기대한 그런 종류의 보편적인 감정은 아니지만, 충분히 우리가 느껴봤음직한 그런 감정들을 다루기에 떨림이 있었다. <1Q84>를 읽은 지 몇 년이 지났고, 하루키에 대한 책들의 내용에 대한 기억도 희미해진 상황에서 왜 사람들이 하루키에 대해 열광하고 나 또한 열광했었는지 궁금했는데, 읽으면서 다시 생각났다. 하루키는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생각했던 것들을 잘 끄집어낸다. 도덕이나 관습에 얽매이지않고 우리의 무의식에서 생겨난 사고들을 마치 우리 마음 속에 들어왔다 나간냥 낱낱히 보여준다. 또한, 우리 대부분들이 경험해봤을 법한 흔한 일들을 신비롭고 그럴싸하게 꾸며내는 능력이 있다. 우리의 지루해 보이는 일상도 하루키의 문체를 거치면, 그럴싸한 소설이 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랄까. 문득, 나의 매일을 하루키가 대신 일기로 써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 지루해 보이는 나의 삶도 꽤 그럴싸해 보이지 않을까.
다자키 쓰쿠루는 스스로를 굉장히 평범하고 색깔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주위의 사람들은 그를 꽤 다르게 기억하듯이 우리가 스스로 생각하는 자신의 모습이 타인에게는 전혀 다르게 보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얼핏 나 자신의 모습이 타인에게는 어떻게 보여질지 궁금했다. 또한, 타인과의 관계에서 알게 모르게 베인 생채기가 나의 사고를 방해할 수 있다는 생각에 나 또한 그 올가미에서 탈출할 수 있는 순례를 떠나보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책 초반에는 몰입도가 떨어졌는데, 초중반을 지나면서 한 장 한 장 넘기는 줄도 모르고 다 읽게 만드는 걸 보니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는 않는다. 그냥 드는 궁금증 하나. 하이다는 도대체 어디로 가버린 걸까. 시로의 죽음은 과연 타살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