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수다

[소문의여자(오쿠다히데오)] 웃음은 사라지고 씁쓸함만 남은 해학성

삼동집 2013. 8. 23. 17:47
반응형

 

 

해학과 스릴러

오쿠다히데오 최초의 범죄스릴러. 저자는 인간의 해학성을 그려 보려고 했다고 해서 가볍게 웃음으로 버무리는 해학과 범죄스릴러라는 어울리지않는 조합에 이야기를 어떻게 끌고 갈 수 있을지 궁금했다.

 

 

퍼즐식 구성의 재미

'소문의여자'는 소문난 그 여자에 대한 이야기이다. 일본 지방의 소도시에서 '소문의 여자'는 예쁜 얼굴은 아니지만, 큰 가슴에 펑퍼짐한 엉덩이를 가진 마성의 여자다. 마성의 여자이기에 보는 남자마다 그 여자의 매력에 빠져들 수 밖에 없다. <소문의여자>는 '중고차 판매점의 여자, 마작장의 여자, 요리교실의 여자, 맨션의 여자' 등 '...여자'로 끝나는 10개의 목차로 나누어져있고, 10개의 목차는 이어지는 내용이기는 하지만, 각각의 짧은 단편으로 이루어져있다. '소문의여자'를 둘러싼 10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책이 끝날즈음에 이 여자에 대해 전체적으로 알 수 있다. 각각의 에피소드마다 '소문의여자'를 제외하고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달라지니, 초반에는 이 모든 인물들이 어떻게 엮일지 흥미를 돋구어 책장을 빨리 넘기게 된다. 하지만, '소문의여자'를 제외한 주변 인물들은 각각의 에피소드로 끝나버리고, 퍼즐을 완성해 갈 수록, 긴장감은 점점 느슨해지고 실망감은 커져간다.

 

 

각자의 욕망을 위해 소소한 죄를 짓고 살아가는 현대인에 대한 생생한 묘사

<소문의여자>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주조연을 따지지 않고 죄를 안짓고 살아가는 사람이 거의 없다. 죄의 경중은 다르지만, 각자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위해 크고 작은 죄를 지으며 살아간다. 그것은 엄격히 따지면, 법을 어기는 것이지만, 작은 부분에 대해서까지 세밀히 들여다보는 사람들은 없기에 그냥 오늘을 살아간다. 이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데는 이런 각자의 욕망을 가진이들이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게 행동하고, 그들의 행동이 타당성을 갖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것에 공감할 수 있어서였다. 그 누구도 도덕적으로 완벽한 사람은 없으며, 우리는 모두들 크고 작은 약점을 지니고 살아간다. 나, 그리고 우리의 이웃들이 그러하듯이. 

 

 

웃음은 사라지고 씁쓸함만 남은 해학성

오쿠다히데오는 이 책을 통해 인간의 해학성을 그려보고자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책은 전혀 웃기지 않는다. 과거 그의 책들은 가벼운 발랄함이 살아있었다면, 이번의 <소문의 여자>는 심각하지는 않지만, 가볍지도 유쾌하지도 않다. 매 에피소드마다 등장하는 남자들은 '소문의 여자'만 보면, 일제히 해벌쭉해서는 뻔한 못된 상상들이나 하고 있고, 한 두 번 그런 남자캐릭터를 볼때는 측은했는데, 10편의 에피소드마다 그런 남자들만 나오니, 남자들 모두가 그런 것 같고, '남성' 자체에 회의감까지 든다. 그러다가 '인간 스시'가 등장할 때는 정말 책을 덮게 만든다. 

 

 

책 속의 남자들에게는 마성의 여자, 독자에게는 진부한 여자

 

 

책 띠지에 도무지 공감할 수 없는 문구로 책을 홍보하고 있다. "응원해 주고 싶은 팜므파탈이 떴다!" 도대체 응원해주고 싶은 그 팜므파탈은 어디있더냐. <소문의 여자>인 이토이 미유키는 자신의 욕망을 위해 세 번의 살인을 서슴없이 저지르고, 자신의 욕망을 위해 남자들을 제멋대로 이용하는 여자이다. 남자들이 제멋대로 쉽게 이용당하는 이유는 큰 가슴과 펑퍼짐한 엉덩이로 대변되는 그녀의 몸뚱아리와 그에 걸맞는 그녀의 잔머리와 교태에 있다. 책에 있는 모든 남자들이 하나같이 복종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독자로서 반감이 들 정도이다. 이건 내가 여자라서 질투하는 것은 아니다. 오쿠다히데오는 매력적인 여자 캐릭터를 만들고 싶어했지만, 독자에게는 전혀 매력적으로 보이기는 커녕 불쌍해 보인다. 여자 주인공은 천편일률적인 모습으로 더욱 진부해지고 평면적이 되어 버렸다.

 

 

소문 투성이의 결말

 '소문의 여자'의 가면이 벗겨지고, 좀 더 명확하게 드러나야 할 이야기가 드러나지 않고 손오공이 구름타고 날아가듯 여자는 증발해 버린다. 이러한 결말은 구성으로 봤을 때는 어울리나, 이 책을 끝까지 읽은 독자들에게는 무책임하고 허탈감마저 안겨 준다. 오쿠다히데오는 이 여자가 왜 그럴 수 밖에 없었는지 타당한 동기를 설명해주었거나, 그렇지 못하다면, 세 번의 살인에 대한 응당한 대가를 치르는 모습을 보여주든지 좀 더 명확한 결말이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