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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감은틀리지않는다] 철썩같이 믿었던 내 기억이 내 기억이 아니라니!

삼동집 2014. 2. 4.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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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감은틀리지않는다](이하 [예감])의 인터넷 교보문고의 책소개를 보면, '40년 전의 편지 한 통이 불러온 비극, 스릴러, 친구의 이유없는 자살... ' 등등의 스릴러 소설에서 익숙해 보이는 문구들이 눈에 띈다. 그리고, 맨부커상 수상작이라는 훈장이 심리 스릴러에 대한 기대감과 긴장감을 더욱 높여준다.

 

"40년 전의 편지 한 통이 불러온 거대한 비극!
영어권 최고의 문학상으로 꼽히는 부커상 수상작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영국을 대표하는 소설가 줄리언 반스의 작품으로, 기억과 윤리를 소재로 한 심리 스릴러이다. 1960년대 영국. 1인칭 화자인 주인공 토니 웹스터는 대학에 진학하고 베로니카라는 여자친구와 사귀게 되지만, 결국 성적 불만과 계급적 콤플렉스를 극복하지 못하고 헤어진다. 그러던 중, 장래가 촉망되던 케임브리지 장학생인 친구 에이드리언 핀이 욕실에서 자살한다. 철학적이고 총명한 수재였던 그가 자살한 이유를 아무도 알지 못한다. 40년의 세월이 흐르고 토니 웹스터는 자신이 에이드리언에게 보낸, 이제는 기억하지도 못하는 한 통의 편지가 엄청난 파국을 불러왔음을 알게 되는데….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하지만,,,, 나는 몰랐다. 맨부커상이 그런 상일줄은. 맨부커상의 심사기준으로 가독성을 이야기했을 때, 심사위원들이 엄청나게 반발했다는...소설은 예술이지 엔터테인먼트가 될 수 없다는 생각의 배경에서 탄생한 문학상이 맨부커상이라는 것을 진작에 알았다면, 이 책을 클릭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흔히, 상받은 영화는 지루하다는 공식이 소설계에서도 통하나보다. 책이든, 영화든, 재미를 추구하는 내게 [예감]은 참으로 점잖고 깊이감이 있는 책이다. 교보문고의 책소개를 살짝 읽고 긴장감있는 스릴러겠거니 하고 주문했는데, 긴장감보다는 내 기억을 자꾸 체크해 보게 싶게 만드는 책이다.

 

[예감]은 예순이 넘은 한 남자의 성장담이자 인생이야기를 미스터리방식으로 풀어가지만, 스릴러는 아니다. 예순살이 넘어 이미 은퇴하여 평범한 삶을 살고 있는 토니에게 어느 날 편지 한 통이 배달 된다. 이십대 때 사귄 여자친구의 어머니가 그에게 오백파운드와 두 개의 문서를 남겼다는 내용의 편지 한 통. 이 편지 한통으로 토니는 더이상 갑남을녀의 토니가 아닌, 소설의 주인공이 되기에 충분한 요소를 갖춘 인물이 된다. 

 

토니가 자신도 이유를 모르는 오백파운드와 자신의 옛친구의 일기장으로 밝혀진 문서를 받기 위해 자신의 옛여자친구를 만나면서, 하나둘씩 툭툭 터지는 이야기는 막바지에 이르러 독자의 뒷통수를 후려친다. 하지만, 마지막 독자의 뒷통수를 후려치기까지 우리는 각자의 삶을 돌아보고, 우리의 기억도 점검해봐야 하고 많은 감정들을 오고가게 만든다. 잡생각을 지우기위해 스릴러 소설을 읽는 것인데, 읽으면 읽을수록 잡생각이 많아진다. 뒷부분의 긴장감은 짧고, 앞부분의 인생스토리는 장황해 미스터리 구조의 소설이지만, (지루할정도는 아니지만) 쉽게 몰입되지는 않는다. 마지막에 독자의 뒷통수를 후려친 후, 후다닥 사라져버려 독자로 하여금 '내가 지금까지 읽은게 뭔가..' 싶다가 처음부터 다시 읽게 만든다. 그래서 이 책을 두 번 읽은 독자가 많다던데, 이해가 간다.

 

[예감]은 미스터리 소설이지만 결국 기억에 관해 사유하는 책이다. 우리 머릿 속에 남겨진 기억들이 얼마나 부정확하고 불충분하고 미흡한지를 인지하게 만드는 책이다. 자신의 기억이 시간이 지나면서 얼마나 자신친화적으로 바뀌어가는지 간접 체험하게 만든다. [예감]은 사람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자신의 기억이 변질되어가는 모습과 그로인한 감정을 치밀하고 정교하게 묘사한다. [예감]은 그런 점을 보면, 어른들을 위한 소설책이다. 중간 중간 살아온 인생을 반추하며 읊조리는 토니의 주옥같은 생각들은 메모하고 싶어질 정도이다.

 

기억하게 되는 것은, 실제로 본 것과 언제나 똑같지는 않은 법이다.

 

'역사는 부정확한 기억이 불충분한 문서와 만나는 지점에서 빚어지는 확신이다.'   '역사는 살아남은 자, 대부분 승자도 패자도 아닌 이들의 회고에 가깝다는 것을'

 

 '가령 헤어진 후에야 베로니카는 나와 잤다'라는말은 재고의 여지 없이 '나는 베로니카와 잔다음 차버렸다'로 바뀔 수 있다.

 

젊은시절에는 자신의 미래를 꾸며내고 나이가들면 다른 사람들의 과거를꾸며내는 것

 

우리가 살면서 우리의 자신의 이야기를 얼마나 가감하고 윤색하고 가지를 쳐내면서 만들어가는걸까. 어느순간 우리의 삶은 들려준 이야기에 지나지 않아지고, 우리에게 반기를 드는 사람도 적어진다.

 

노년에 이르면 기억은 이리저리 찢기고 누덕누덕 기운 것처럼되어버린다.

 

인생의 목적이 흔히 말하듯 인생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님을 얼마의 시간이 걸리건 상관없이 기어코 납득시킨 끝에,고달파진 우리가 최후의 상실까지 체념하고 받아들이게 하는데 있는건 아닌가 생각할 때가 가끔있다.  

 

하지만,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있다. 에이드리언이 "영국인들은 진지해야할 때 진지하지 않는 게 제일 싫어"라고 말한 의도나, 마거릿이 "당신이 이제 혼자야." 라고 말한 의도는 두 번을 읽어도 여전히 모르겠다. 토니의 나이가 되면, 알게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