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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시픽림] 트랜스포머와 고질라의 이종격투기?

삼동집 2013. 7. 19.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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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시픽림] 스틸컷

 

예고편만 봤을 때는 [트랜스포머]와 [고질라]의 싸움처럼 보이길래 별로 호감형은 아니었지만, 길예르모 델 토로 감독이고, 그리고 주위의 반응이 생각보다 좋아 보게되었다.

일단, [퍼시픽림]은 포스터의 '사이즈에 전율하라'는 노골적인 카피문구처럼 남다른 사이즈를 자랑한다. 점점 대형화를 지향하는 헐리웃 블록버스터들의 최고봉을 달리는 듯. [퍼시픽림]에 등장하는 로봇과 카이주(괴물)는 다른 헐리웃 블록버스터를 비교해도 압도적이다. [트랜스포머]의 10배도 더 되어보이는 초대형 로봇은 거대 선박을 장난감 요요처럼 사용하는 상상을 뛰어넘는 크기이다. 이 로봇이 자신보다 더 큰 고질라와 싸우니 이런 볼거리가 어디에 있겠는가. 하지만, 이런 싸움도 스토리가 없다면, 금새 질려버린다는 것을 우리는 [용가리]에서 이미 알았다.

그래서, [퍼시픽림]은 단순하지만, 허술하지 않는 드라마를 만들었다. 영화가 시작되고 5분 이내에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정보와 이미지들로 상황을 빠르게 세팅하면서, 관객을 몰입하게 만든다. 또한, 인간의 신경을 로못과 연결해 하나를 만든다(드래프트)는 설정을 활용해 흥미를 돋운다. 초반에 '드래프트'의 개념이 잘 잡히지 않아 답답하지만, 한편으로는 관객들을 궁금하게 만들어 더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게 한다. 로봇과 고질라의 싸움이라는 이종격투기처럼 남다른 비주얼에 단순한 스토리지만, 잘 짜인 드라마로 관심을 사로잡는다.

로봇과 싸울수록, 점점 대형화되는 카이주를 보면서, 예거프로그램의 효율성이 의문시되고 각국마다 거대한 장벽을 세우는 모습을 볼 때는 [진격의 거인]이 생각나기도 했다. [퍼시픽림]을 본 많은이들이 [에반게리온]을 언급하지만, 인간이 중심이 된 로못 소재의 이야기라는 면에서 비슷할지는 모르겠지만, 느낌은 전혀 다르다. 영화의 몰입을 가장 방해하는 요소는 바로 여배우. 키쿠치린코. 원래 독특한 이미지의 배우라 어느 영화에서나 꽤나 존재감이 느껴지는 배우인데, 마코의 캐릭터에 잘 부합하는지는 모르겠다. 상처를 가지고 있고, 이 상처로 인해 더욱 강해져보이기는 하나, 키쿠치린코는 그것을 뛰어 넘어 미스터리한 느낌이 강해 영화의 몰입을 방해한다. 자꾸 뭔가를 숨기고 있는듯 하고, 불안해 보이고, 답답해 보이는 것이 설정인지, 버릴 수 없는 이미지인지 헷갈린다.

영화 전반에 흐르는 세심한 디테일은 보통의 블록버스터와 차별화된다. 오프닝에서 찰리 헌냄이 카이주와 싸우기 위해 전투복을 입을 때, 전투복의 낡은 느낌의 디테일이 살아 있다. 그동안 보여준 대부분의 로봇 영화들은 이러한 상황에서 항상 새 것의 느낌이었는데, 몇 년을 사용한 복장의 느낌을 살린 것 같아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최근에 본 [월드워z], [진격의거인], [퍼시픽림] 등 암울한 디스토피아를 깔고 가는 이야기들을 주로 봐서 그런지 세상을 보는 시선이 걱정 가득해지고 있다. 거의 한 달 동안 해를 못 봐서 가뜩이나 마음은 이미 디스토피아인데, 더 무거워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