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반응형

 

"귀신나방이라고 들어본 적 있나요?

이놈은 인적이 드문 산속, 벼락을 맞고 부러진 나뭇등걸에 서식하죠.

전 세계적으로 버마 북쪽 산림 지역에서만 발견되는 희귀종이랍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놈을 끔찍하게 생각해요 왜냐면 몰골이 흉측하거든요. 날개는 지저분하고 더듬이는 소름 끼칠 만큼 커다랗죠.

몸에서는 찐득한 점액질이 연신 흘러내려요.

귀신나방에게는 신비한 습성이 있습니다. 귀신나방은 우기에 산란을 해요.

산란기가 되면 변신을 하는데 날개를 덮고 있던 지저분한 갈색은 비단처럼 반짝이는 보랏빛으로 바뀌죠.

생애 최고의 아름다움을 뽐내던 귀신나방은 산란을 시작한답니다. 그리고 이때 녀석의 괴이한 능력이 나타나죠.

산란을 마친 귀신나방은 하늘이 먹구름으로 뒤덮이면 숲속을 분주하게 날아다니기 시작합니다. 정말 굉장한 광경이에요.

보랏빛 요정들이 추는 춤처럼 아름답죠. 

그렇게 무리 지어 날던 귀신나방은 천둥이 가까워오면 약속이나 한 듯 한 나무에 내려앉는 답니다.

그러면 놀랍게도 그 나무에 벼락이 치는 거예요. 꽈르릉.

녀석들은 벼락을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고 마지막 순간 죽음을 향해 비행하는 거죠.

그리고 얼마 후 우기가 끝나면 아침 햇살과 함께 부화한 유충들이 나타납니다. 녀석들은 어미가 생을 마감했던 나뭇등걸로 모여들어요.

그리고 그곳에 둥지를 틀죠. 또다시 반복될 생애 가장 아름다운 죽음을 준비하며."

 

<궁극의 아이>로 유명한 장용민 작가의 2년전 소설 <귀신나방>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이 묘사를 보고 있으면, 귀신나방이 도대체 어떻게 생겼을지 궁금해져서 손이 근질근질해지는데,

막상 찾아봐도 희귀종이라 그런지 자료가 거의 없다. 유튜브에서 약간의 힌트 영상을 찾아 볼 수는 있지만,

책에서 묘사한 것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랄까. 뭐, 지금은 생물시간은 아니니, 귀신'나방'에 대한 이야기는 그만하고.

소설을 이야기해보자면, <귀신나방>은 <궁극의아이>만큼은 아니지만, 쉽게 몰입되고, 술술 읽힌다.

아마 나른한 오후에 이 책을 집어든다면, 3-4시간 안에 너끈히 읽고,

마치 넷플릭스 드라마 한 타이틀 가볍게 몰아보기 한 느낌 정도 들지 않을까?

 

초반 1/3정도 보면, 스토리가 어떻게 흘러가겠구나, 뻔히 보이는 것 같고 그래서 그 다음은 더 읽는 속도가 붙어서 술술 넘어가지만,

마지막 엔딩은 다시 한번 반짝 긴장감을 갖게 만든다. 하지만, 아쉽게도 <궁극의아이>만큼 초몰입해서 넘어가는 책이 아닌 데에는

역사 속의 실존 인물과 가상 인물이 뒤섞여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실존 인물, 그것도 희대의 악마로 불리는 히틀러를 소재로

이야기를 펼치다니! 워낙 역사 속 중요인물이다보니, 허구적 상상으로 만들어낸 세계 속에서 마주했을 때, 낯설다고 할까.

생각해보니 장용민작가는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을 쓴 시나리오 작가이기도 하니.

역사 속 실존 인물을 가지고 이야기를 꾸며내는 데는 이미 재주를 발휘하신 적이 있었군.

그래도 히틀러가 자신의 뇌를 젊은 사람에게 이식해 연합군의 추적으로부터 도망쳤다는 설정은

아무리 '설정'이라고 해도 와닿지 않는 느낌이랄까. 또한, 추적자 오토바우만이 위기에 처한 결정적인 순간에

모사드가 나타나서 허무할정도로 쉽게 상황을 해결해주는 스토리라인은

여느 할리우드 영화들이 범하는 오류처럼 긴장감이 깨져버리는 순간이기도 하다.

아쉬움은 있지만, 그래도 애들이 옆에서 뛰어다녀도, 주먹질을 하며 싸워도 집중해서 봐지는 재미진 책인건 인정.


P.S 아, 깜빡 할 뻔 했네요. 사실 위에 묘사한 '귀신나방'은 실존하는 나방이 아니고, 이또한 작가가 만들어낸 허구의 나방 종류라고.

장용민 작가의 글발은 허구와 사실 경계없이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데에 있다는... 이또한 알고나니 소름이 돋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