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국열차(봉준호)] 관객의 기대에 부응하는 <설국열차>

2013. 8. 26. 15:09영화나부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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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우리 인간도 그저 원숭이과의 동물일 뿐.

 

 

800만명이 보고서야 보게 된 <설국열차>. 원작을 보지는 않았지만, 왜 봉준호와 박찬욱이 열광했는지 알 것 같다. 인류의 역사가 크게 순환하는 과정을 <설국열차>에서는 축소판으로 보여준다. 당연히 그 안에 우리 인간의 비인간적인 모습이 오롯이 녹아 있을 수 밖에 없기에 <설국열차>는 이 두 감독들에게 매력적인 원작일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설국열차>는 제한된 공간에서 인간이라는 동물을 꾸역 꾸역 집어넣고 어떻게 살아가는지 지켜본다. 열차 밖은 지배층의 미스판단으로 CW-7을 뿌리는 바람에 빙하기가 와서 나갈 수 없고(나가는 즉시 급속냉동된다) 살기 위해서는 <설국열차> 안에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 열차 안에는 칸마다 계급이 나뉘어져 있다. 이른바, 신계급주의. 맨 앞 쪽의 엔진칸에는 열차의 제작자이자 주인이기도 한 윌포드가 있고, 꼬리칸에는 가장 힘없는 하류 계층의 사람들이 마치 짐짝 처럼 칸칸히 담겨져 있다. 이 하류층들은 일정시간에 인원수 체크와 함께 배급되는 프로틴바로 삶을 연명한다. 쌀은 커녕, 정체불명의 양갱이만을 밥으로 주니, 하류층들이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이들은 원래부터 하류층이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커티스를 중심으로 하류층 사람들은 전복을 시도한다. 꼬리칸을 탈출해서 열차의 맨 앞 쪽으로 가기 위한. 그러기 위해서는 열차 한 칸 한 칸의 문을 열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 사람이 바로 남궁민수. 커티스는 열차 내 교도소에 수감된 남궁민수를 탈출시켜 문을 열게 해 한 칸 한 칸 앞으로 나아간다.

 

윌포드는 제한된 공간에서 사람들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모든 것이 제자리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것이 질서이고 정의라고 말한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볼때도 맞는 말이긴 하다. 갇힌 공간에서 많은 수의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만큼 엄격한 질서가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사회는 <설국열차>처럼 갇혀진 사회가 아닌데도 보이지않는 투명 유리가 우리를 감싸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갖은자들은 조금도 자기것을 내주려 하지않고, 갖지 못한자들은 생존을 위해 조금이라도 더 뺏으려한다. 영화 초반에 질서를 지키기 위해 총리에게 신발을 던진 앤드류가 잔인하게 팔을 잘리는 장면을 봤을 때 눈을 찡그리게 된 데에는 비단 그 장면자체가 잔인해서가 아니라 기득권층에 맞서려는 자에게 철저히 짓밟힘을 당하는 모습이 비단 <설국열차>에서만 일어나는 상황은 아니기 때문이다. 커티스는 동료의 희생으로 열차의 앞 칸까지 갈 수 있었지만, 열차의 앞 칸의 윌포드는 이 모든 상황을 이미 알고 있었고, 이 또한 설국열차의 존속을 위해 필요한 과정이라고 말한다. 커티스가 목숨을 걸고 앞으로 온 행위는 '커티스혁명'이라고 부를 수 있는 설국열차사에 있는 하나의 역사적 사건인 셈일 뿐이다. 이런 사실에 좌절하고, 혼란해하는 커티스에게 진짜 '혁명'을 시도할 수 있게 하는 사람이 바로 남궁민수이다. 남궁민수는 열차 칸과 칸 사이의 문을 여는 것이아니라 밖으로 나가는 문을 열어서 진정한 기득권으로부터의 해방을 시도한다. 인류가 그렇게 꿈꾸는 자유는 그곳에 있는 것이다.

 

4,000만달러의 제작비로 이런 배우를 캐스팅하고 이런 비쥬얼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에 놀랐지만, 한편으로는 마지막 부분에 중요한 이야기들을 모두 주인공의 대사로 처리해 버려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 초반에 열심히 열차를 움직이기위해 석탄을 모조리 사용한 느낌이랄까. 헐리우드 배우들의 대거 등장과 영어대사가 절반이 넘는 한국영화를 보고 있으니 한국영화의 글로벌화가 새삼 실감났다.

 

어제(/825)까지 879만(KOFIC 영화관 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을 찍은 <설국열차>는 아마 1000만을 넘기겠지만, <숨바꼭질>과 <나우 유 씨 미 : 마술사기단> 등의 영화에게 스크린을 대거 내준 상황이기에 조금 시간이 걸리지 않을까 싶다. 아마도 봉준호 감독은 <괴물>에 이어 천만 관객을 두 번이나 달성한 최초의 감독이 될 것이다. <살인의추억>을 시작으로 <마더>, <괴물>, <설국열차>까지. 데뷔작 <플란더스의 개>를 제외하고는 빵빵 안터진 작품이 없는 그의 다음 작품이 <해무>라는 데 어떤 영화일지 벌써부터 궁금하다. 개인적으로 이렇게 잔인한 영화가 800만을 넘겼다는 데에 사실 놀랐다. 아무리 봉준호감독이라도 이렇게 심각하고 어두운 주제에 게다가 잔인하기까지 한 영화를 800만이나 봤다는 데에 이제 우리 관객의 취향이 다양화된 건지, 아니면, 봉준호감독의 입김이 태평양도 얼려버릴 정도로 강한건지 정말 궁금하다.  

 

<설국열차>를 보면서, 궁금한 점 중 하나는 빙하기가 와서 열차에 사람을 태우기 시작할 때, 어떤 이유로 사람들을 앞 칸과 꼬리칸으로 나눠태웠을까 하는 점이다. 또한, CW-7의 부작용 또한 각국의 정부들이 모르고 있지는 않았을 것 같고... <설국열차>의 프리퀄이 나와 이런 궁금증을 해소시켜주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