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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인>, <한산:용의 출현>, <헌트>와 함께 올여름 최고 기대작으로 뽑혔던 <비상선언>. <외계+인>의 기대에 못 미치는 반응으로 사실 올여름 대작들이 모두 부풀려진 건 아닐까? 하고 생각하면서도 <비상선언>은 챙겨 보게 되었다. 항공기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2시간 넘는 시간을 어떻게 긴장감 있게 끌고 갈지가 궁금했다.

여름휴가철인지 북적대는 사람들로 부산한 공항. 바쁜 남편을 놔두고 아줌마들끼리 휴가를 떠나는 무리, 아토피를 앓는 아이와 이민을 떠나는 가족, 친구들끼리 우정 여행을 떠나는 무리 등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누가 봐도 블랙컨슈머 같은 한 남자가 등장한다. 그 남자는 누가 봐도 사이코패스 또는 사회 부적응자 정도로 보인다. 누가 봐도 그 사람이 비행기 테러범임을 <비상선언>은 초반부터 숨기지 않는다. 한편, 경찰서로 '자신이 내일 비행기를 테러할 것'이라는 제보가 들어오고 형사인 인호는 자기 와이프가 마침 비행기 테러를 한다고 하는 날에 공항으로 간 게 찜찜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제보가 들어온 사람의 집에 가보게 된다. 그런데... 그 집에서 의문의 시체가 발견되고 그 사람이 마침 자신의 와이프가 탄 비행기와 같은 비행기를 타고 있음을 알게 된다.

매번 느끼지만 임시완은 선과 악을 모두 가진 최적의 배우이다

테러범을 처음부터 바로 보여주고 그의 범죄계획을 초반에 바로 오픈하면서 시작하면서 영화는 여느 클리쉐한 재난영화의 문법과 다르게 움직인다. 여객기에 탄 150명의 사람들을 치명적인 바이러스라는 극한의 공포에 몰아넣으면서 대체 이 상황을 어떻게 풀어갈지 궁금증을 증폭시킨다. 상황은 하나하나 꼬여만가고, 꼬여간 실타래는 시간이 흐르면서 하나둘씩 풀려간다. 우리는 그래도 '인간'이니까.

살려고 발버둥치는 순간 속에서 그래도 끝내 우리는 '인간'답게, 인간으로서 행동하고 결정함을 잊지 않는 <비상선언>은 극한의 재난상황에서 서로 다른 입장에 있는 타인들의 의견들이 표출되면서 인간의 본성을 여과 없이 들여다볼 수 있다. 더 섬뜩한 건, 이렇게 서로 대치되는 사람들의 모습들이 우리 사회에서 익숙하게 보았던 모습이라는 것이다. 과거의 한국 사회에서 보았던 몇몇의 재난 상황에서 반복되었던 그 모습들이 <비상선언>에서 그대로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비상선언>이 영화여서 그런지 그나마 품격을 지켰던 것은 여객기 밖에 있던 사람들이 아니라 여객이 안에 타고 있었던 사람들의 선택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우리는 인간임을 잊지 않을 수 있었다. 

 때로는 극한의 공포를 보여주기 위해 습관적으로 보여주었던 카메라워크와 다른 앵글, 때로는 변주된 사운드를 적절히 사용하여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한재림 감독의 연출력은 역시 뛰어났다. 또한, 범죄자를 추격하면서 보여주는 자동차 추격씬은 그야말로 감탄이었다. 카메라 시점을 추격하는 사람들의 앵글로 한정하면서 긴장과 충격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영상으로만 긴장감을 만들어내지 않고 때로는 사운드를 활용하여 영상에서 주는 긴장감보다 더한 긴장감을 만들어냈다. 

<위계+인>에 버금가는 캐스팅력으로 이 멤버들을 과연 어떻게 버무릴지 궁금했는데, 비행기 안에서, 비행기 밖에서 안팍으로 각자의 중심축 역할을 해주면서 정말 소름 돋는 재난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때로는 너무 신파로 가는 건 아닌가 싶다가도, 이 정도로 감정을 쥐어짜 내서 다음 상황에서 앞의 감정을 활용하면서 교묘하게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다. 영화 끝무렵에는 조금 지치기도 하지만, 그래도 일관된 게 메시지를 전하는 느낌이다. 

코로나19 이후, 묵혔던 대작들이 '묵혀서' 그런지 다들 예상 외로 힘을 못 쓰는 상황에서 <비상선언>이 활짝 필수 있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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