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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12월에 JTBC에서 방송 예정인 드라마 <허쉬>의 원작, <침묵주의보>

드라마를 보기 전, 내용을 짐작하기 위해 원작을 집어 들었다. 현재 문화일보 기자로 일을하는 작가도 <침묵주의보>는 팀킬을 하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다고 이야기해서 내용이 더욱 궁금했는 데, 읽어보니 반 자전 소설 느낌이 드는 건 나만의 기분?


박대혁은 <매일한국>의 온라인뉴스부 기자, 38살, 동종 업계 기자와 결혼했지만, 와이프는 현재 드라마작가 지망생.

<매일한국>의 기자로 10년 정도 일한 박대혁은 이제 수습기자나 인턴기자들을 교육하는 어엿한 중간 관리급 기자이다.

법대를 나왔지만, 집안의 사정으로 사시를 준비할 수 없었고, 바로 생업전선에 뛰어들어야 하는 상황에서 주위에서 누가 기자는 판사, 검사와 친구해주더라. 라는 카더라 통신을 믿고 메이저 신문사의 기자가 되었다. 신입기자였을 때는 정의 사회 구현! 이런 목표도 있었겠지만, 10년이 지난 현재는 그런 목표는 희미해진지 오래이다. 

그런 와중에 인턴기자로 뽑힌 신입 기자들의 교육을 맡고 그 중 김수연이라는 친구를 알게 된다. 김수연은 올해 서른 살, 지방 사립대 출신. 몇몇 신문사에서 인턴을 했지만, 정규직 채용이 안되고 신문사를 돌아다니고 있는 부장인턴이다. 하지만, 실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 지방 사립대 출신이라는 스펙에서 자꾸 미끄러지고 있었던 것이다. 수연 스스로도 <매일한국>에서 정규직이 되는 것이 정식 기자가 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있다. 능력이 없는 게 아니고, 배경이 부족한 거라 선배 기자들의 평이 좋은 데, 어느 날 국장으로부터 자신에 대한 평가를 엿듣게 된다. 능력은 있는 것 같은 데, 지방대 출신이 <매일한국>에서 기자를 한다면, <매일한국>의 가오가 떨어진다고. 

정말 이 이유때문일까? 그날 저녁 선배 기자 대신 당직을 서게 된 김수연은 자신의 유서를 온라인 기사로 배포한 후, <매일한국>의 빌딩에서 투신 자살을 한다. 

'No Gain, No Pain' 세상이 정해놓은 성공의 기준에 맞추기 위해 패배자들이 노력해봤자 세상의 틀은 더욱 공고해지고, 나는 더욱 고통만 받을 뿐이다. 얻으려고 하지 않으면, 고통도 없다...

김수연의 유서는 많은 취업 준비생들의 공감과 분노를 사고, 김수연을 추모하기 위해 페이스북에 'No Gain No Pain'이라는 추모 페이지가 개설된다. 이 페이지에는 비슷한 경험을 한 젊은이들이 익명으로 자기 경험을 제보하기 시작한다.


어렸을 때는 뉴스로만 접하는 일인 줄 알았는 데, 막상 사회에 나와 직장에서 일하게 되면서, 말하기도 민망한 온갖 부조리를 겪으면서 그때마다 울컥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부조리조차에도 익숙해지는 나 자신을 발견했을 때, 그 순간은 또 가슴이 뜨거워지지만, 이 또한 지나가리라 생각하면서 그 마음을 견디게 되었다. <침묵주의보>는 이런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공감과 울림을 주는 소설이다. <침묵주의보>의 주인공은 사회 정의 구현을 목표로 하는 기자이기에 더욱 참기 힘들었겠지만, 일반 회사에 다니는 회사원들도 회사를 위한답시고 행해지만 온갖 부조리들을 참아내는 건 버겁기 매한가지이다. 그래서 이 소설에 더욱 몰입하게 된다. 

소설의 주인공은 (소설의 주인공이기에 가능했다고 내 스스로를 위안해 보지만) 멋있게 한 방을 날리며 퇴장하지만, 현실의 나는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고 혼자 읊조리며 오늘을 견디니, 소설을 읽으면서도 자괴감이 든다.


"국장이 이 조직에서 아무리 사자처럼 굴어봐야 동물원 속 사자일 뿐이야. 사자가 아무리 날뛰어 봤자 동물원 주인은 오너란 사실은 변하지 않아."

조직 내의 악랄한 중간 관리자 위에 더 악랄한 대표이사 조합은 어느 조직에나 꼭 있는 법이다. 사자는 동물원의 주인인 양 행세하지만, 동물원 주인이나 동물원의 동물들은 다 안다. 누가 주인인지.


"이 나라에서 기자로 살면서 영화처럼 취재하는 일보다, 배우로 살면서 기자를 연기하는 게 더 쉬울 테니까."


기레기들이 넘쳐나는 한국에서 진정한 기자로 산다는 것은 <비밀의 숲>의 황시목 검사정도는 되어야 가능하지 않을까.


"아무리 강한 사람이라도 마음의 맷집에는 한계가 있는 거야. 나는 진실이 누님도 그 무렵에 마음의 맷집에 한계가 왔기 때문에 그런 비극적인 선택을 했다고 본다. 그 누님과 친분이 있던 연예인들은 그 누님이 절대 자살할 사람이 아닌데 자살해서 충격을 받았다고 했지. 하지만 누님의 맷집이 어느 정도인지 남들이 어떻게 알아? 자기 자신의 마음의 맷집도 모르는 게 사람이야. 너는 네 맷집이 어느 정도 되는지 알아? 잘 모르겠지? 그건 겪어봐야 아는 거야. 수연이도 비슷한 경우가 아닐까? 우울증의 가장 무서운 합병증은 자살이야."

가끔 왜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까. 이해하기 힘든 자살의 이유로 가장 수긍이 갔다.


"무조건 침묵하라는 말이 아니다. 이 조직, 아니 대한민국에서 힘없는 놈의 용기만큼 공허한 것도 없더라. 네가 문제를 지적하고 쿨하게 조직을 떠난다고 하더라도 동요는 잠깐뿐이야. 곧 누군가가 네 자리를 대체하게 될 테고, 조직은 다시 아무 일 없던 것처럼 굴러가게 될 거야. 지금까지 늘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 사실은 변함없어."

박대혁이 내부고발을 해도 결국 오너는 국회의원에 당선이 되고, 오히려 박대혁은 갖은 협박을 당한다. 많은 내부고발자들이 내부고발 후, 불행한 삶은 살고 있다는 기사에 나같이 평범한 사람들은 더욱 몸을 움츠리게 된다.


"선배, 저희가 정말 비겁한 소리를 하고 있다는 것 잘 알아요. 사회의 부조리를 바로 잡아보겠다며 기자를 지망했는데 가까운 곳의 부조리를 보고도 어쩌지 못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우선 언론사에 취직을 해야 기자로서 뭐든 시도해볼 수 있는 거잖아요?"

항상 드는 고민이다. <비밀의숲>의 최빛 단장도 윗선의 잘못을 잘 처리해주면, 자기는 더 권력이 있는 자리에 앉을 수 있을 것이고 그러면 세상을 더 정의롭게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다. 더 큰 정의 실현을 위해, 작은 악은 눈감아줘야 하는 것인가? 


"대혁씨는 내 말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지만, 나는 예술 하는 사람들이 세상에서 제일 대단한 사람들 중 하나라고 생각해. 아무리 잘난 대기업에서 연봉을 많이 받는 사원일지라도 오너 앞에서 고개도 못 들고 그림자도 못 밟아. 그런데 예술 하는 사람들은 아무리 가난해도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과 같은 자리에 앉아 맞먹는 게 가능해. 왜냐고? 누구한테 아부하며 사는 사람들이 아니거든. 오로지 자기 작품으로 자신을 증명하는 사람들이야. 개개인이 기업 오너와 다를 게 없어. 포털 사이트 인물 정보를 검색해봐. 가수, 화가, 작가는 검색돼도 대기업 사원은 안 나와. 왜? 노예는 검색할 가치가 없거든."

이 부분은 좀 왜곡된 부분도 없지 않지만, 마지막 한 문장이 마음에 콕 박혔다. 노예는 검색할 가치가 없다. 옛날 노예는 자기들이 노예인 줄 알았는데, 현대의 노예는 자기가 노예인지를 모른다는 거다. 더 측은하다.


사르트르가 노벨문학상 수상을 거절하면서 "이데올로기에 얽매이기 싫은 나는 자본주의가 주는 상을 받을 수 없다"라는 말을 남겼는데, 이 양반도 말년에 궁핍해지자, 변호사를 통해 뒤늦게라도 상금 수령이 가능한지 문의했다고 한다. 이 놈의 자본주의. 쩐이 없으면, 멋짐도 구림이 되는 이 놈의 자본주의.

그런데, 드라마 <허쉬>의 주인공이 황정민인데, 어째 박대혁기자보다는 훨씬 선배기자 같은 느낌인데, 어떻게 바뀌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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