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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맘 사오리는 아들 미나토에게서 이상한 행동을 감지하고 학교를 찾아가는 데, 석연치 않은 학교의 대응에 상황은 점점 커져만 간다. 그리고, 그들의 진실은 어느 태풍이 몰아치던 날, 휘몰아치는 바람처럼 사람들을 감싼다.

미나토 역을 맡은 쿠로카와 소야

지나가는 버스에서 가늘한 폰트의 영화 [괴물] 홍보 포스터를 봤을 때, 어떻게 영화 제목을 '괴물'로 정했을지, 도대체 이런 자신감은 어디서 나왔을지 궁금했다. 영화 [괴물]이라 하면 봉준호 감독의 [괴물]이 떠오르는 터라, 유명한 영화의 동명 타이틀을 가져가는게 꽤나 부담스럽지 않을까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후에 깨달았지만, 봉준호 감독의 [괴물]은 무려 2006년도 작품이었으니, 그 영화를 먼저 떠올리는 사람들은 적어도 30대 후반이상일 터이니, 나의 기우였다. 시간이 더 지난 후에 버스 홍보 포스터의 [괴물]이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라는 걸 알았고 그제야 수긍이 갔다. 그리고, '요건 좀 챙겨봐야지' 했는데 결국 개봉한 지 거의 3주가 되어서야 영화관에 가게 되었다. 결국 [괴물]이 내가 올해 영화관에서 본 세 번째 영화가 되었고, 세 번 밖에 영화관에 가지 않았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고, '영화의 위기'라는 떠다니는 이야기들을 다시 한번 체감하게 되었다. 

사오리 역을 맡은 안도 사쿠라

사실 [괴물]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기대가 갔지만, 한편 고레에다 히로카즈 작품으로 최근에 본게 [브로커]였고, [브로커]가 만족스럽지 않다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로는 작품적으로 그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 뛰어나다고 할 수 없었기에 기대감의 크기는 소소했던 게 사실이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이번 [괴물]은 그의 나름 초기작  [아무도 모른다](2005)를 봤을 때 느꼈던 전율처럼 무언가 아귀가 딱딱 맞아가는 소름이 느껴졌다. 치밀하게 짜여진 각본과 연출이 미세한 틈하나 남기지 않고 꽉 짜여 있는 느낌. 또한, 영화 마지막에 나오는 사카모토 류이치의 'Aqua'는 영화가 끝난 한참 뒤에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게 하는 힘이 있다. 2시간 길이의 영화를 봤는데, 24시간 동안 그 영화 속에서 헤매는, 오래간만에 '보는 것'의 재미를 깨닫게 해주는 작품이었다. 

호리 선생님 역을 맡은 나가야마 에이타

영화는 세 가지의 시점으로 구성이 된다. 제일 처음에는 미나토의 엄마인 사오리로부터. 그다음은 선생님인 호리 선생님, 마지막은 아이 미나토의 시점으로 이어진다. 각자의 시점이 교차편성이 아닌, 오롯이 한 사람의 시점이 끝나고 나서 다른 사람의 시점이 이어지기에 대상 시점이 아닌 캐릭터들의 행동에 대한 의구심이 계속 쌓인다. 사오리의 시점에서 보고 있으면, 호리와 미나토의 행동이 도무지 이상하고, 가장 이상한 학교의 행동에 혀를 내두를 즈음 호리 선생님의 시점이 시작된다. 그리고, 가장 궁금했던 미나토의 시점으로 사건을 바라본 순간 모든 의문이 풀리면서 각자의 캐릭터들을 비로소 이해하게 된다. 소통 불능의 시대. 서로 자신의 입장에서만 이야기하고 상대방의 이야기는 듣지 않게된 요즘, 이 시대에 각각의 주요 캐릭터의 시점으로만 이야기를 끌고 가면서 감독은 우리에게 상대방이 되어보는 시간을 갖게 한다. 요즘, 이 시대에 굉장히 효과적인 구성이었다. 

[괴물]에서는 각각의 캐릭터들이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응축되어 제 역할을 하고 있다. 주요 3명의 캐릭터 외에 미나토의 친구인 요리, 교장선생님, 주위 선생님들, 그리고 반아이들까지 작은 톱니바퀴로 맞물려 돌아가듯이 하나의 주제를 향해 움직이고 있다. 자신의 아들에 대해 다 안다고 생각했지만, 성장기에 접어든 아들은 아들만의 생각이 있는 것이고, 새 학교에서 성실하게 아이들을 돌봤다고 생각하는 선생님은 아이들의 짧은 찰나의 행동으로 아이들을 판단하게 되고, 성장기에 접어든 아이는 자신의 갈팡질팡하는 마음과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는 죄책감과 연민, 그리고 사랑이 뒤엉켜 복잡할 뿐이고, 여기에 주변 인물들의 소문이 토핑처럼 얹어져 일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간다. 우리의 작은 방관이, 우리의 심심풀이로 내뱉은 소문이 결국은 누군가에게 생채기를 입히고 결국은 회복할 수 없는 상처가 된다.

하지만, [괴물]의 가장 큰 '괴물'은 역시 학교의 부조리한 시스템과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짓는 사회 속에서 힘 있는 자가 약한 자에 대해 행하는 폭력, 따돌림이고 이로써 생기는 복합적인 요인이 빚어낸 결과이다. [괴물]은 학교폭력의 문제를 이야기 전면에 내세우지는 않았지만, 학교폭력의 원인을 구조적으로 가장 잘 표현한 영화가 아닐까 한다. '당신에게는 인간의 마음이 있는가'라는 영화의 홍보카피 문구처럼 휴머니즘을 잃어가고 있는 이 시대, 되새겨볼 만한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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