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배트맨] 처절할 정도로 미련스러운 이 시대의 영웅

크리스토퍼 놀란과 크리스천 베일 조합의 <다크 나이트> 시리즈를 본 지 거의 10년이 지난 2022년, <혹성탈출>을 만들었던 맷 리브스 감독과 <테넷, 트와일라잇>의 로버트 패틴슨 조합의 새 배트맨을 만났다. 그동안 '배트맨=크리스천 베일'이 마치 공식처럼 되어 있어서 크리스천 베일과 다른 배트맨을 만난다는 것 자체의 낯섦을 관객들에게 어떤 매력으로 돌려줄지 궁금했다.

고담시의 시민들에게 배트맨은 이제 환영받지 못하는 영웅이 된지 오래. 그래도 묵묵히 어둠 속에서 악을 응징하며 살아가는 배트맨에게 고담시를 이끄는 엘리트 집단을 잔인하게 살해하는 수수께끼 킬러 리들러가 나타난다. 리들러는 고담시장, 경찰청장 등 고담시의 핵심 수뇌부들을 살인 할 때마다 배트맨에게 메시지를 남기고 리들러의 악행을 멈추게 하기 위해 배트맨은 배트맨의 방식으로 접근하는 데...

무려 176분. 거의 3시간에 가까운 부담스러운 러닝 타임이지만, 로버트 패틴슨이 보여주는 외롭고, 슬퍼 보이는 배트맨의 매력에 빠져 3시간이 금새 지나간 느낌이다. 자기가 구해준 고담시의 시민에게 "가까이 오지 마"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외면받는 슬픈 영웅이지만, 마치 어떠한 순간에도, 고담시의 시민들의 안전을 지켜야 한다는 신념 하나로 버티는 사람처럼 미련할 정도로 집요하게 고담시를 지킨다. 남들이 환영해주지 않아도 나만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배트맨의 모습에, 그런 미련스러움에 마음이 쓰이고, 관심이 가고, 정이 가고, 그런 캐릭터를 로버트 패틴슨이 찰떡같이 살린 느낌이다. 

<혹성탈출>의 맷 리브스 감독은 블랙이 살짝 섞인 강렬한 레드의 타이틀 로고처럼 영화의 매 씬이 블랙과 레드만의 색으로 채워져 절제되고 통일된 미장센을 완성하였다. 레드도 과하지 않고 적절하게 사용하여 효과적인 임팩트를 주었다. 또한, 세련된 음악으로 배트맨의 외로움과 묵묵함을 표현하였다. 새로운 감독과 새 배우로 그동안의 배트맨과는 또 다른 그들만의 매력적인 배트맨을 만들어냈달까. 유인원들 마저 섬세한 인간의 감정을 가진 캐릭터로 만든 감독이니만큼 배트맨의 복잡하고 다면적인 마음을 관객들의 마음에 오래 각인시키기 위해 보여준 섬세한 앵글도 돋보였다. 뛰어난 캐릭터 표현력에 비해 액션씬이 화려하게 보이지 않을지 모르지만, 클라이맥스가 될 카체이싱씬은 제대로 방점을 찍은 느낌이다. 동굴에 사는 외로운 배트맨. 여자들의 마음을 제대로 저격했다.

역시 내 마음 속 1순위 영웅은 배트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