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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영국 카네기 메달상 후보에서 <해리포터>를 제치고 만장일치로 메달을 수상한 작품!"


이런 수식어구는 참 강렬하다. 물론, 책을 좀 읽는 사람들은 그 말의 의미를 잘 알겠지만. <리버보이>는 1997년에 영국에서 출간된 후, 한국에는 무려 10년이 지난 2007년에 출간되었다. 아마도 '청소년 문학'이라는 꼬리표 때문이 아닐까 추정해 보지만, 10년이 지나 출간된 게 무색하게, 요즘에도 소설분야 베스트셀러에 간간히 이름을 올릴 정도로 스테디셀러가 되었다. 나도 베스트셀러 목록에 자주 언급되는 모습을 보고 도서관에서 찾아 읽게 되었으니. 이렇게 스테티셀러 책들을 도서관에서 대출해 보면, 온갖 테이핑이 덕지덕지 되어 있기 마련이다. 역시나 <리버보이>도 예외가 아니었다. 심지어 마지막 부분 한 페이지는 실수로 찢었는지 한 장이 앞-뒤페이지가 바뀐 채 붙어있었다. 이 책의 상태가 <리버보이>가 얼마나 많은 사람의 손을 거쳐갔는지 보여주는 방증이리라. 

도서관에서 빌려 온 <리버보이> 책 표지

<리버보이>는 죽음을 앞 둔 할아버지와 손녀가 할아버지가 어릴 적 살았던 마을로 휴가를 오면서 시작된다. 수영을 너무나 사랑하는 손녀는 아침마다 근처의 강에서 수영을 즐기다 자신보다 더 수영을 잘하는 한 소년을 만난다. 휴가지에서도 하루하루 눈에 띄게 병세가 악화되는 할아버지,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는 15살의 손녀, 그리고 신비로운 소년이 만들어내는 삶과 죽음의 이야기가 바로 <리버보이>의 큰 줄거리다.

아마 대부분의 어른들이 그렇겠지만, 어른이 된 지금도 여전히 죽음을 맞이하는 게 서툴고 낯설다. 삶과 죽음은 데칼코마니처럼 붙어있는 말인데도, 내게는 두 단어에서 느껴지는 간격이 천국과 지옥처럼 멀게만 느껴졌다. 작가 팀 보울러는 청소년들에게 삶과 죽음이 우리 인생에서 자연스러운 한 과정임을 알려준다. 사실 거의 모든 청소년문학이 청소년들만을 위한 책이 아님을 읽다 보면 알게 되지만, <리버보이> 또한 '청소년 문학'이라고 한정 짓기에는 책의 타깃을 너무 좁게만 바라본 게 아닐까 싶다.

<리버보이>는 '청소년 문학'이라고 어른들이 봤을 때, 유치하거나 속이 빤히 보이는 지루한 소설이 아니다. 오히려 15살, 어른과 아이의 경계에 선 소녀의 당차고 순수한 행동을 봤을 때, 어른이어서, 이것 저것 계산하고 한 가지 일에 온전히 그것에만 집중하지 못하는 어른들에게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소설이다. 무엇보다 맑고 청아한 느낌을 주는 이런 소설이 오랜 만이라 설렜다.

아래는 소설의 192~193P를 그대로 옮겨 보았다. 오래 오래 간직하고 싶은 마음에.

그녀는 눈을 바다에서 떼지 못한 채 소년 옆에 앉았다.
"저렇게 멀리까지 보일 줄은 몰랐는데. 이건 마치... 마치..."
그녀는 마치 성스러운 장소에 있는 사람처럼 소리 죽여 속삭이고 있었다.
"사람의 일생을 보는 것 같지?"
"일생이라고?"
그녀는 그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면서도, 고개를 돌려 다시 소년을 바라보았다.
"강의 일생일 수도 있고."
그의 눈은 수평선에 고정되어 있었다.
"강은 여기에서 태어나서, 자신에게 주어진 거리만큼 흘러가지.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느리게, 때로는 곧게 때로는 구불구불 돌아서, 때로는 조용하게 때로는 격렬하게. 바다에 닿을 때까지 계속해서 흐르는 거야. 난 이 모든 것에서 안식을 찾아."
"어떻게?"
"강물은 알고 있어. 흘러가는 도중에 무슨 일이 생기든, 어떤 것을 만나든 간에 결국엔 아름다운 바다에 닿을 것임을. 알고 있나? 결말은 늘 아름답다는 것만 기억하면 돼."
"하지만 죽음은 아름답지 않아."
그녀는 할아버지를 생각하며 말했다.
"아름답지 않은 건 죽음이 아니라 죽어가는 과정이겠지."
그가 여전히 바다를 바라보며 말했다.
"삶이 항상 아름다운 건 아냐. 강은 바다로 가는 중에 많은 일을 겪어. 돌부리에 채이고 강한 햇살을 만나 도중에 잠깐 마르기도 하고. 하지만 스스로 멈추는 법은 없어. 어쨌든 계속 흘러가는 거야. 그래야만 하니까. 그리고 바다에 도달하면, 다시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날 준비를 하지. 그들에겐 끝이 시작이야. 난 그 모습을 볼 때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껴."
그녀는 그가 말하려는 게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한동안 조용히 있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오늘 이곳을 떠날거야."
그녀가 그를 보았다.
"떠나? 왜?"
"이제 강을 보내야 할 시간이야."
"강을... 보낸다고?"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강을 보내줘야 해. 마냥 붙들고 있을 순 없어, 하지만 아직 한 가지 해야 할 일이 있어."
그가 그녀를 힐끗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난 바다까지 헤엄쳐 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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