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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 작가의 새 소설 '너무나 많은 여름이'가 출간되어 이 여름에 딱 읽기 좋은 소설이 나온 마당에 지금 '이토록 평범한 미래'를 읽고 뒷북 review를 올리는 것 같지만. 읽은 걸 기록하기로 한 내 나름대로의 결심은 지키고자 하는 마음에 이렇게 짧은 기록을 남긴다. 

[이토록 평범한 미래]는 김연수 작가가 2014년부터 2022년에 발표한 단편 8편을 묶어만든 소설집이다. 단편이다 보니, 각 편의 주인공들이 각각의 다른 사건을 겪지만, 결국 이들을 관통하는 건 시간이다. '시간이 흘러간다'는 관점에서 과거, 현재, 미래로 나누는 관습화된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시간을 재구성하여 각자 무언가를 상실한 주인공들에게 그 시간이 위로가 되어 준다.

자신을 놓고 자살해버린 엄마에 대한 상실감으로 자신도 엄마가 쓴 소설의 줄거리처럼 동반자살을 꿈꾸는 딸, 자식을 잃은 엄마가 정처 없이 떠돌다가 무심코 도달한 섬의 끝, 치매에 걸린 아빠와 단둘이 살다 돌아가신 아빠에 대한 상실감에 집에 불을 지른 딸, 아내를 잃은 상실감에 아내가 이야기했던 몽골에 갔다가 열병에 걸린 남편, 엄마를 일찍 여읜 아이들의 알 수 없는 공감대, 죽음을 결심하고 마지막으로 들른 카페에서 흘러나온 노래에 위로받고 그 가수를 찾은 한 남자, 사랑을 만나고, 헤어지면서 생기는 상실감, 곧 죽음을 앞둔 할아버지의 오래전 죽었던 동생에 대한 상실감에 얽힌 이야기들이 '시간'으로 치유받는 이야기다. 

김연수 작가의 소설을 읽고 있으면 그야말로 그의 소설에 흠뻑 '빠진 상태'가 되어 버린다. 그의 이야기에 빠져들다 보면 어느 덧 상처받았던 주인공들이 치유되는 모습에 나 또한 아팠던 상처가 낫는 기분이다. 언제나 힘들 때, 위로가 되는 소설이다.

용서는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기억할 때 가능해집니다.(p30.)

너도 KO를 당해 링 바닥에 누워 있어보면 알게 될 거야. 그렇게 넘어져 있으면 조금 전이랑 공기가 달라졌다는 사실이 온몸으로 느껴져. 세상이 뒤로 쑥 물러나면서 나를 응원하던 사람들의 실망감이 고스란히 전해지고, 이 세상에 나 혼자만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지. 바로 그때 바람이 불어와. 나한테로. 무슨 바람이냐고 물었더니 '세컨드 윈드'라고 하더라고요. (p.60)

헤어질 때는 헤어지는 일에만 집중할 것. 사랑할 때 그랬듯이."(p.113)

그가 늘 믿어온 대로 인생의 지혜가 아이러니의 형식으로만 말해질 수 있다면, 상실이란 잃어버림을 얻는 일이었다.(p.156)

"이 글을 끝내면서 내가 진정으로 사랑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 것은 하나뿐이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사랑은 '빠진 상태'라는 것이다."(p.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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