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뙤약볕이 내리쬐는 한여름. 어느 가정집 안마당에서 여자아이의 시체가 발견된다. 고작 네 살 밖에 안된 작고 작은 여자아이는 그 집에 사는 사토코의 여동생 유키코의 딸인 나오코. 나오코가 죽을 무렵 유키코는 근처 호텔에서 불륜을 즐기고 있었고 나오코를 봐주기로 했던 사토코는 집에 할아버지가 있다는 핑계로 나오코를 잠시 두고 자신의 딸인 가요와 치과에 다녀오고. 치매를 앓고 있는 할아버지는 젊은 남자가 나오코를 죽였다는 알뜻 모를 뜻한 말을 하는데...

나오코를 죽인 범인을 찾는 미스터리 소설 [백광]은 11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챕터마다 화자가 바뀐다. 때로는 한 명의 화자가 두 챕터에 걸쳐 이야기를 하기도 하지만, 챕터마다 여자아이의 죽음과 얽힌 화자들이 등장하여 그 화자들 모두 자기가 범인이라고 말한다. 도대체 진짜 범인은 누구일까. 물론, 물리적으로 살인을 한 당사자만을 살인범으로 좁게 해석한디면 범인은 분명 한 명 또는 기껏해야 두어 명일 테지만, 아이를 죽음에 이르게 한 간접적인 조력자까지 포함한다면, 그 누구도 이 사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흥미로운 건 살인사건이 발생했고, 추리 소설인데, 이 소설에 형사는 등장하지 않는다. 미스터리를 풀어나가야 하는 사건인데, 형사, 경찰은 없고 오로지 가족, 가족과 연관된 사람들로 이야기가 채워지고 범인의 윤곽이 좁혀진다. 챕터마다 예상하지 못했던 진실들이 툭툭 터져 나오면서, 다음 챕터로 자연스럽게 넘어가게 만든다. 그렇게 한 챕터만, 한 챕터만 더! 보다보면, 이야기는 어느새 작가의 메시지와 함께 마지막 페이지에 다다르게 된다. 

사람에 대한 배신감과 그 배신감으로 인해 새로운 죄책감이 생기고 그 죄책감에 얽매여 살다보니 그 죄책감이 또 다른 비극을 불러내고, 어렸을 적 뭉쳐진 감정들이 시간이 갈수록 퍼지고 커지면서 여러 사람들의 감정과 서로 만나면서 빚어진 비극. 하지만, 이건 명백히 사람이 만들어낸 비극이다. 읽다 보면, 각각의 캐릭터들이 살아있는 냥 동기를 가지고 있다 보니, 마치 아이의 죽음을 정당화하는 것처럼 묘사하기도 하여 불편한 부분도 있지만, 이 부분을 작가의 생각으로 오해하지 않고 본다면 오래간만에 읽을 만한 추리소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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