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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다 서점에 들러 소설 분야 베스트셀러 코너에 가면 거의 항상 만날 수 있는 책 [아몬드]. 100만 부가 넘게 팔렸다니, 베스트셀러를 넘어 스테디셀러 책인데 지금에서야 읽게 되었다. 10대로 보이는 남자아이의 무표정한 표정이 사연 있어 보이기는 했지만, [아몬드]라는 딱히 상상력을 자극하지 않는 제목에 '청소년 소설'이라는 잘못된 착각으로 책이 손에 가지 않았던 것 같다. 손원평 작가의 신작 [튜브]가 나오면서, 이 작가의 대표작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이제야 들었다. 참 늦다. 

아몬드도 먹기 시작하면 끊기가 힘들듯이 책 [아몬드]도 한번 시작하면 멈추기가 싫었다. 다음 챕터만, 다음 챕터만 하면서 계속 윤재의 이야기에 빠져들고 싶었고 페이지를 계속해서 넘기게 되었다. 10대 청소년을 주인공으로 했다고 [아몬드]를 마치 청소년 권장도서처럼 홍보하는 건 정말 독자를 '청소년'으로만 한정짓는 우를 범하는 짓이다. [아몬드]는 물론 청소년들에게도 유익하고 재미있는 소설이겠지만, 어른에게도 뭉클한 무엇을 건네는 책이다. 

[아몬드]의 주인공 선윤재는 '알렉시티미아'라는 감정 표현 불능증을 앓고 있다. 알렉시티미아는 선천적으로도 후천적으로도 생길 수 있지만 윤재의 경우는 편도체의 크기가 작아서 특히 공포를 잘 느끼지 못하는 선천성 감정 표현 불능증이다. 우리는 흔히 공포를 못 느낀다면, 두려운 상황에서 오히려 용감해질 수 있으니 좋은 것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공포를 못 느낀다는 건 정말 피해야 할 상황에서도 피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쉽게 말하면, 누군가 윤재에게 총을 겨눠도 윤재는 피해야 한다는 생각을 못한다는 것이다. 또한, '감정 표현 불능증'이기에 자신의 감정도 잘 이해하지 못하고, 감정의 변화도 거의 없지만, 타인의 감정도 느끼지 못한다. 타인이 슬픈지, 기쁜지 판단을 못하는 것이다. 그런 윤재가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았으면 하는 마음에 엄마는 상황별 감정 표현 교육을 윤재에게 시켜주지만, 어느 날 유일한 가족인 할머니와 엄마가 묻지마 살인의 희생양이 된다. 이제 고작 열일곱 살인 윤재만 남기고.

"오늘 누구든지 웃고 있는 사람은 나와 함께 갈 것입니다"

할머니를 죽이고, 엄마를 식물인간으로 만든 그 살인범은 유서에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평범한 소시민이었지만, 하는 일마다 족족 망하면서, 분노를 타인에게 무자비하게 쏟아낸 사람. 그런데, 그 역시 현장에서 자살을 해서 윤재는 이제 탓할 사람도 없어졌다. 

그런 와중에, 윤재에게 낯선 남자가 다가오고, 특이한 제안을 한다.
자신이 옛날에 아들을 잃어버렸는데, 잃어버린 아들과 윤재가 닮았으니 죽어가는 아내를 위해 아들 역할을 하루만 해달라는 것.


"딱히 해가 되지 않는다면 도와주는 것이 좋다"

는 평소 할머니의 말씀을 듣고 자란 윤재는 특이한 이 제안을 수락하기로 한다.

이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윤재의 인생은 꼬여만 간다.


"나는 알고 있다. 곤이가 착한 아이라는 걸. 하지만 구체적으로 곤이에 대해 말하라면 그 애가 나를 때리고 아프게 했다는 것, 나비를 찢어 놓았다는 것...(중략) 밖에 말할 게 없다. 언어라는 건 그랬다. 이수와 곤이가 같은 사람이라는 걸 증명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거다."

말로 내뱉는 다면, 분명 '아닌데...' 란 답변이 나오지만, 마음으로는, 머릿 속으로는 또 그게 아니라는 걸 안다. 때로는 말을 하지 않아도 우리는 안다. 그냥 본능적으로.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것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껴도 행동하지 않았고 공감한다면서 쉽게 잊었다. 내가 이해하는 한, 그건 진짜가 아니었다. 그렇게 살고 싶진 않았다."

묻지마 살인의 아픔을 딛고, 친구를 위해 앞으로 한 발 나아가는 윤재의 행동에서 윤재가 한 뼘 성장했음을 느낀다.

 

"말했듯이 사실 어떤 이야기가 비극인지 희극인지는 당신도 나도 누구도, 영원히 말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게 딱 나누는 것 따윈 애초에 불가능한 건지도 모른다. 삶은 여러 맛을 지닌 채 그저 흘러간다."

삶에는 딱히 정답도 없고, 계획대로 흘러가지도 않는다. 희극을 의도했지만, 때로는 비극으로 끝나고, 비극인줄 알았지만, 때로는 희극으로 끝나기도 한다. 이러한 자연스러운 삶의 흐름을 알려주기에 좋은 청소년 도서이기도 하지만, 이미 장성한 내게도 삶은 녹록지 않기에 진정 위로가 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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